※ 이 아래로 소설 한편과 영화 두편에 대한 까발림 있음
1995년 개봉한 [스크리머스]라는 영화가 있다. [로보캅]으로 유명한 피터 웰러가 주연을 했던 B급 예산의 SF영화였다. 이 영화의 원작이 되는 소설은 말이 필요없는 SF소설의 거장, Philip K. Dick의 'Second Variety'였는데 원작의 재미를 잘 살린 당시로서는 상당히 잘만든 영화였다.
미래의 냉전시대, 미군은 소련군에 대항하기 위해 자가복제를 하는 살상기계(스크리머1)를 개발한다. 적군 아군 안가리고 살상만을 위해 스스로를 복제하는 기계들이 변종을 만들어가며 인간들을 죽이다가 달기지의 존재를 알고서 쳐들어가기 위해 애쓴다는...뭐그런 내용이다.
이 잘 만든 영화는 원작을 잘 살리면서도 몇가지 부분에서 소설과 다르다.
1. 기계의 이름은 영화에서처럼 스크리머가 아니라 claw(발톱)다.
2. 원작의 핸드릭스는 영화에서 보여지듯 멋지고 카리스마 넘치는 인물이 아닌, 순진하고 답답한 인물이다. 시종일관 기계에게 농락당하다 결국 이자식 때문에 인류는 멸망행 급행열차를 예약하게 된다-_-
3. 소설에서는 타소2가 핸드릭스 소령의 셔틀을 타고 달기지로 향하지만 영화에서는 핸드릭스와 곰인형(이녀석도 기계)이 같이 간다.
4. 원작에서 기계는 오로지 살상만을 추구한다. 하지만 영화에서는 기계의 진화과정에서 인간적인 감정을 소유하게 된다. 소설에서 핸드릭스 소령이 '전쟁이 끝나 기계들의 목적이 사라지고 나면 진짜 잠재성이 모습을 드러낼텐데, 그럼 그들이 새로운 종이 되는게 아닐까?'라는 질문을 하는 부분이 있는데 소설의 결말에서 이들은 자기들끼리도 서로를 죽이기 위한 무기를 개발하게 되는 킬링머신일 뿐이었다. 영화는 원작과 다소 다른 결말로 가는데 핸드릭스 소령의 생각대로 인간화가 이루어지게 된다는 푸근한(?) 전개를 보여준다.
2009년 개봉한 [스크리머스: 더 헌팅]이라는 개같은 영화가 있다. 스크리머스2라고도 알려져 있는데 스토리 상으로 전편을 계승하는 척 하면서 기계 진화의 관점에서는 전편에서 부정한 원작의 아이디어로 돌아가는 웃기는 녀석이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영화가 재미없다는 점이겠지만, 그보다 괘씸한 건 그다지 설득력도 없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전개할 거면서 굳이 전편과 이어지는 내용으로 만들 필요가 있었나 싶다는 거다. 기왕 이렇게 된거 신나게 까고 부수자는 생각이었을까? 그렇다고 액션이 출중하지도 않다. 이 영화는 어떤 장면에서든 부담없이 자리를 뜨고 화장실에 다녀올 수 있을 정도로 맘편한 영화다. 마지막에 뱃속의 태아가 갈고리를 세우는 엔딩장면은 소름이 끼칠 정도로 싸보였다.
다시 소설로 넘어와서...
주인공 핸드릭스 소령은 마지막에 타쏘를 탈출시키고 달기지로 가는 방법을 가르쳐준다. 타쏘가 달기지에 도착하면 부상당한 자신을 구출하러 와줄거라는 바보같은 희망을 갖고서... 하지만 두번째 변종인 줄 알았던 클라우스의 시체에서 Ⅳ-V(네번째 변종)이라는 각인을 발견하고는 뒷통수를 쳐맞은 것 마냥 충격에 빠진다. 두번째 변종은 타쏘였던 것이다. 하나둘 자신을 향해 달려드는 변종들, 그중에는 타쏘도 섞여 있었다. 자신으로 인해 기계가 달기지마저 점령할 것이라는 생각에 혼란스러워 하던 중 타쏘의 허리춤에 매달린 폭탄을 보게 된다. 그 폭탄은 타쏘가 다른 변종들을 제거하기 위해 사용했던 것. 핸드릭스는 폭탄을 생각하면서 그나마 마음이 편해짐을 느끼며 소설이 마무리 되는데 이 부분은 이해하기가 좀 애매하다. 기계도 자신들끼리 죽인다는 걸 알기 때문에 달기지에 더이상의 새로운 변종은 만들지 않을거라 생각한걸까? 어차피 핸드릭스는 한마리만 도착해도 그 한마리가 다수가 되어 달기지를 점령할 것이라는 걸 안다. 설마 도착하자마자 인간과 동화되어 서로 사이좋게 지낼 것이라 생각하지는 않았을테고, 그렇다면 달을 점령한 뒤 새로운 종이 되어 번영하리라 생각한 걸까? 어떤 경우든 마음이 편해질 이유는 아닌 것 같다. 아마 타쏘의 허리춤에 달린 폭탄을 쏴 지금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기계들과 적어도 같이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었을 것 같다. 인류를 멸망케 할 장본인 다운 쪼잔한 자기 위안이 아닐 수 없다.
암튼 이 작품은 Philip K. Dick의 유명한 소설3이지만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스타일은 아니다. 다음에 기회가 있으면 '안드로이드는 전기양의 꿈을 꾸는가?'나 '높은 성의 사나이'를 읽어봐야겠다.
'두번째 변종'으로 검색하던 중 괜찮은 책을 하나 발견했다. '마니아를 위한 세계 SF 걸작선'이라는 책인데 잘 알려지지 않은 좋은 단편들이 많은 것 같다. Philip K. Dick의 'Second Variety', [아이로봇]으로 유명한 아이작 아시모프의 '죽은 과거', 특히 키릴 불리체프의 '내가 당신들을 처음 발견했다'가 실려 있는데, 이거 정말로 훌륭한 작품이다.
-끝
Trackback Address >> http://mr-ok.com/tc/trackback/199
-
Subject: 스크리머스 2
Tracked from 공락조 블로그 2009/05/15 08:16 delete하하하... 재미있다. 아, 얼마 만에 보는 추억의 빈티지 스타일의 B스러운 B뮤비인가. 그것도 무려 간만의 에스에프 호러! 유명한 필립 케이 딕 원작이고 95년도 오리지날을 좋아하는 나로서는 호기심 반, 의무감 반, 꼭 봐줘야 하는 작품이다. 더군다나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호러영화 '피의 복수 Shallow Ground, 2004'를 만든 쉘든 윌슨 감독의 작품이기도 하고. 어째 요즘에는 이런 비무비도 그렇고 에스에프 장르도 그렇고 만드는 ...
-
Subject: 스크리머스 (Screamers, 1995)
Tracked from [Horror movie.booK Log] 2009/05/15 08:43 delete인간이 개발한 살인 무기가 스스로 진화하여 인간을 대체할 새로운 종으로 태어난다는 영화 '스크리머스'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 만든 병기가 인간이 되어 사랑을 배우고 같은 마음을 지닌 인간을 살려줌으로 인해 역설적으로 인간이 기본적으로 갖추어야할 덕목이 무엇인지를 얘기한다. 필립 K. 딕의 '두번째 변종'을 원작으로 하고 있는 스크리머스는 원작의 배경인 러시아와 연합군의 대립체제를 냉전체제가 끝난 95년에 발표된 영화답게 우주에 새롭게 건설된 경제블록과..




댓글을 달아 주세요
1999년 '바이러스'라는 영화도 있는데, 거기도 기계들이 스크리머스와 비슷하게 인간들을 가지고 놀아. 전체를 다 보지는 못하고 부분 부분만 봤는데, 다 보면 재미있을 듯.
<바이러스> 검색해 보니 대충 <스크리머스 : 더 헌팅> 비슷할 거 같다. 한번 챙겨봐야지. 둘을 비교해보는 것도 재밌겠다. 근데 1999년작인 <바이러스>가 훨 재밌을 거 같어-_-
흥미롭네요.
저 아이가 들고 있는 예쁜 곰인형이 기계라니,,
저거 한마리때문에 <스크리머스>에서는 지구가 멸망할 것이라는 식으로 마무리되죠. 그렇긴 해도 귀엽네요ㅎㅎ
원작은 짧지만 묵시록적인 분위기가 일품이었고, 영화는 저렴한 값으로 미래의 디스토피아를 적절히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을 대체할 요량으로 외계생명체가 들어오던 기계가 발전하여 전복되던간에 그런 설정이야 과거부터 워낙 많았지만 톱하나 달린 동그란 기계 하나(세포)가 스스로 진화한다는 설정은 매우 단순하고 불친절해 보이기도 하지만 인간의 진화 과정을 그만큼 잘 은유할 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진부하지만 언제나 화두가 될 수 밖에 없는 이야기를 던지기도 하고요. (그다지 진중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말이지요.) 아무튼 매우 똑똑한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트랙백 잘 받았습니다. ^^
정말 분위기 하나는 멋들어졌는데 말이죠^^ 원작도 원작이지만 영화는 정말 일품이었습니다. 제 경우는 영화에 매료되어 후에 원작을 찾아 읽게 되었기도 하고요. 망할 스크리머스2를 보지 않았다면 아마 이런 포스팅도 없었을텐데, 혹시라도 사람들이 그것때문에 원작의 완성도를 오해(할 리 없겠지만,)할까 싶어 생각난 김에 몇자 끄적여 봤습니다. 방문 감사합니다.
어렷을적 봤던 영화속 장면들이 시간이 흐를수록 점점 현실화 되어가는것 같아.. 때론 두렵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인간의 상상은 문명을 발전시켜 왔으니까..^^ 그나저나 옥토님 '낮술'은 보셨습니까? ㅋㅋ
故 아서 C. 클라크 경은 SF소설로 과학에 큰 기여를 하셨다고 하죠. 통신위성의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그분의 소설엔 늘상 풍부한 영감이 넘쳐 그 소설들을 읽으며 과학에 몸담게 된 사람들도 넘쳐납니다. 안그래도 요즘 SF원작 읽는 재미에 빠져있는데 마지막으로 이분의 '라마'시리즈를 볼까 생각중입니다.
마침 이웃 블로거 한분께서 보내주신 덕분에 봤는데 이거 완전 개그중에서도 상개그더군요ㅋㅋㅋ 상황이 너무 가관이라 중반부터 배꼽잡고 봤습니다^^;높은 성의 사나이는 SF보다는 대채역사물에 가까운 이야기입니다.(미쿡 대신 일본+독일의 승리가 기본 베이스로 깔리는 미쿡을 배경으로 한 소설입니다.)
필립 K. 딕의 소설들 중에서는 의외로 앞뒤서두가 맞는 측면이 강하고요. 개인적으로 필립 K. 딕 입문작으로 추천합니다.
그나저나 스크리머스 더 헌팅은...출시 안 된걸 다행으로 여기고있습니다...(예정까지 잡혔었다는...)
그 책을 아무리 구하려해도 못 구하겠던데... 혹시 갖고 계신가요? (굽신굽신)
[스크리머스 더 헌팅]은 ... 봤습니다... ㅠ.ㅠ (젠장!)
영사를 살짝 비틀어서 전개되는 내용이군요. 재밌겠네요. 엇그제 <안드로이드는....>을 읽었는데 원작은 영화보다 더 어렵더군요-_-; 그래도 영화에서 비교적 충실히 재현해낸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음은 <높은성의 사나이>, 그 다음은 <라마> 시리즈로 이어갈 예정입니다^^
보내드렸습니당~위대한 소니 픽쳐스입니다...(이딴거 내지 말고 다른거 안 낸 거나 내라고...)
-_-;; 이번엔 소니 픽쳐스인가요;; 지난번엔 크래커 픽쳐스였나.. 왕의 이름으로를 수입하더니...

에이ㅠㅠ 이쯤되면 막나가는 겁니다!!